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그룹 최대주주 사법리스크에 따른 금융당국의 강제매각명령에다 부실 급증에 시달리던 상상인저축은행이 결국 KBI그룹에 매각된다.
상상인저축은행의 모기업인 상상인은 보유 중이던 상상인저축은행 지분 1224만1주(지분율 90%)를 1107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31일 공시했다. 보유 지분 중 135만9999주(9.99%)는 이번에 매각하지 않고 계속 보유한다고 밝혔다. 매각 예정일은 내년 3월31일이다. 처분 목적은 금융위원회의 주식처분명령 이행 및 투자자금 확보라고 밝혔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9년 상상인그룹 소속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에 대해 불법 대출과 허위 보고, 의무 대출비율 미준수 등의 혐의로 15억21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최대주주인 유준원 그룹회장은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두 저축은행은 유 회장이 전환사채(CB)를 저가에 취득할 수 있도록 형식적으로 공매를 진행하고, 개별 차주에 대해 신용공여 한도를 넘기는 위법한 대출을 내어준 혐의 등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유 회장은 징계에 대해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2023년 5월 대법원에서 패소하면서 징계가 확정돼 저축은행 대주주 자격을 상실하게 됐다.
금융위는 두 저축은행에 대해 대주주 적격성 충족 명령을 내렸지만, 상상인 측이 이를 이행하지 않자 결국 2023년 10월 두 저축은행의 지분 90% 이상을 매각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이후 불복소송전도 벌였지만 계속 패소하자 결국 매각명령을 이번에 이행하는 것이다.
상상인저축은행은 페퍼저축은행과 함께 올 초까지 OK금융그룹과 매각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모두 결렬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상상인 그룹은 이날 공시에서 누가 상상인저축은행을 사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상상인저축은행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곳은 KBI그룹으로 알려졌다. 양 측은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을 거쳐 인수를 확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KBI그룹은 지난 7월엔 경북 구미에 위치한 라온저축은행도 인수한 곳이다. 라온저축은행은 상상인저축은행과 함께 과다한 부동산PF대출 등으로 인한 부실 급증과 경영악화로, 작년말과 올해 초 금융당국으로부터 적기시정조치인 ‘경영개선권고’를 받은 곳이다.
6개월 이내 부실자산 처분, 자본금 증액, 이익배당 제한 등을 강제한 조치다.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중 이 두 저축은행과 파주 안국저축은행 등 3곳이 작년 말 이후 경영개선권고 조치를 받았다.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은 이보다 한단계 더 높은 ‘경영개선요구’ 조치를 받았다.
KBI그룹은 1980년대 갑을그룹에서 갈라져 나와 성장한 그룹으로, 상장사들인 KBI동국실업, KBI동양철관, KBI메탈 등이 주요 계열사다. 당초 형제가 갑을그룹을 경영하다 형 고 박재갑 회장이 사망하면서 동생 고 박재을 회장이 분가해 독립한 그룹이 현재의 KBI그룹(옛 갑을상사그룹)이다.
갑을그룹은 IMF 금융위기때 해체됐지만 KBI만은 살아 남아 지금에 이르렀다. 국내외 41개 계열사가 작년에 올린 매출합계가 3조원 정도라고 그룹 측은 밝혔다. 자동차 부품, 산업소재, 건설, 섬유, 의료 등이 주력이며 최근 금융업을 강화하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KBI국인산업의 최대주주는 고 박재을 회장의 장남인 박유상(68) KBI메탈 고문(44%)이며, 그의 동생들인 박효상(67)-박한상(62) 형제도 각각 28%씩의 지분을 갖고있다. 현재 그룹 회장은 둘째인 박효상 회장이 맡고 있다.
동국실업이나 동양철관은 업황 악화 등으로 현재 적자 아니면 결손상태이나 폐기물업체 KBI국인산업 등 견실한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계열사들도 적지 않다.
상상인저축은행은 자산 규모 업계 10위권의 중견 저축은행이다. 많은 저축은행들이 올들어 부동산PF 부실의 늪에서 벗어나 완연한 회복세이나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 저축은행만은 아직 부실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공시포털에 따르면 분당 소재 상상인저축은행의 경우 지난 6월 말 고정이하여신비율이 27.16%로, 1년 전 24.66%보다 오히려 2.5%포인트 높아졌다. 고정이하여신이란 연체 3개월 이상의 ‘고정’이나 ‘회수의문’ ‘추정손실’ 단계에 있는 여신들을 합한 개념으로, 부실성 여신들이라고 보면 된다. 부실성 여신들이 1년 전보다 더 늘어났다는 뜻이다.
구조조정 일환으로 부실 자산이나 고금리 예금들을 대거 정리하면서 대출-예금-자산 모두 대폭 감소했다. 그런데도 지난 6월 말 연체율은 부동산PF대출이 38%, 건설업이 38%, 부동산업이 47%에 각각 달한다. 아직도 부실을 정리해야할 부동산관련 대출들이 특히 많다.
하지만 CB(전환사채) 투자 등에서 주로 생기는 파생상품 평가이익이 작년 상반기 285억원에서 올 상반기 766억원으로 크게 늘고, 같은 기간 대손상각비도 1029억원에서 436억원으로 크게 줄면서 같은 기간 영업손익은 661억원 적자에서 204억원 흑자로, 흑자 전환했다.
같은 계열인 천안 소재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작년 6월말 24.44%에서 지난 6월 말 23.6%로,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상상인저축은행과 함께 아직도 79개 저축은행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은 자본적정성도 업계 최하위권이다. 지난 6월 말 BIS자기자본비율은 8.71%, BIS기준기본자본비율은 6.92%, 단순자기자본비율은 7.44%에 각각 불과하다. 지난 6월 말 부동산관련대출의 연체율은 부동산PF대출이 9.73%로 많이 낮아졌으나 건설업과 부동산업 연체율은 아직도 각각 53%및 54%에 달한다.
부동산PF 쪽만 당국 눈치 때문에 부실을 어느 정도 정리했을뿐 나머지 분야는 여전히 부실 요인들이 많다. 대손상각비는 작년 상반기 491억원에서 올 상반기 157억원으로 급감했지만 상상인저축은행처럼 파생상품평가이익이 크게 늘지 못해 올 상반기 영업적자는 107억원으로, 여전히 영업적자 상태에 머물러있다. 작년 상반기 영업적자는 410억원이었다.
경북 구미 소재 라온저축은행도 지난 6월 말 고정이하여신비율이 22.29%로, 79개 저축은행들 중 세번째로 높았다. 1년 전 20.62%에 비해 약간 더 높아졌다. 대출-예금-자산을 많이 줄이고, 부동산PF대출 연체율도 0로 만들었지만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 연체율이 각각 52%, 20%로, 아직도 높은 수준이다.
그동안 부실을 많이 줄여 대손상각비가 작년 상반기 61억원에서 올 상반기 0로 크게 감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 9900만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작년 상반기 64억원 적자에 비해 적자 규모는 크게 줄었다.
KBI금융그룹이 대표적인 부실 저축은행 2곳을 인수하는 셈이다. 2곳을 인수하는 김에 같은 상상인 계열인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까지 같이 인수하면 더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을텐데 왜 같이 인수하지 않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 받은 적기시정조치가 나머지 3개 저축은행이 받은 ‘경영개선권고’ 보다 한단계 더 센 ‘경영개선요구’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