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좌초됐던 여객선이 20일 새벽 목포로 자력 이동하는 모습(목포 해경)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승객 등 267명이 탄 대형 여객선이 좌초됐으나 다행히 3시간여만에 승객 전원이 구조됐다. 여객선은 무인도 암초와 충돌한 뒤 멈춰 섰다. 해경은 승객을 전원 구조해 인근 목포항으로 이송했다.
항해 책임자가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는 등 딴짓을 하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해경 초기 수사에서 확인됐다. 하마트면 제2의 세월호 사고가 터질 뻔 했던 순간들이었다.
20일 해경 등에 따르면 19일 오후 8시 16분쯤 전남 신안군 장산면 족도 앞바다에서 2만6546톤급 여객선 ‘퀸제누비아 2호’가 좌초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여객선은 승객 246명과 승무원 21명 등 267명을 태우고 이날 오후 4시45분 제주를 출발해 전남 목포로 가고 있었다. 목포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9시쯤이었다. 차량 118대도 실려 있었다.
여객선은 장산도 인근 무인도인 족도 위에 선체가 절반 가량 올라선 채 좌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좌초 당시 충격으로 27명이 목포 도착 후 병원들로 이송됐다. 큰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허리 통증, 신경쇠약 등을 호소하는 승객들이 많고, 복통 증상을 보인 임산부도 있다고 해경은 밝혔다.
해경은 이날 오후 11시 15분쯤 승객 246명을 모두 구조했다고 밝혔다. 선원 21명은 예인 등 작업을 위해 배에 남았다. 해경은 경비함정 17척, 연안 구조정 4척, 항공기 1대, 서해 특수구조대 등을 구조에 동원했다.
여객선 내 승객과 승무원 전원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구조를 기다렸으며 어린이, 임신부, 노약자 등이 우선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승객들은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배 후미 차량을 싣는 램프를 연결해서 경비함정에 옮겨 탔다. 승객들은 차량이나 화물을 두고 내린 탓에 여객선이 항구에 돌아올 때까지 선사 측이 제공한 숙소에 머물렀다.
여객선은 사고 발생 9시간 27분만인 이날 오전 5시 44분께 목포시 삼학부두에 자력 입항했다. 선사(씨월드고속훼리)에서 동원한 예인선 4척이 20일 새벽 만조 시간에 맞춰 선미에 줄을 묶어 당기는 방식으로 좌초 상황에서 벗어났다. 섬 가장자리 위로 선체가 올라타듯 좌초된 사고였지만 선체에 구멍이 나거나 누수가 생기지는 않아 자력 이동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관련, 해경은 1등항해사와 인도네시아 국적 조타수 등 2명을 중과실치상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고 20일 밝혔다.
김황균 목포해양경찰서 수사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고 관계자들의 휴대전화 포렌식이 필요하고 수사 압박을 느낀 조타수의 도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40대 일등항해사 A씨와 인도네시아 국적 조타수 40대 B씨에 대한 긴급 체포는 이날 오전 5시 44분쯤 이뤄졌다.
해경은 이들이 사고 당시 자동 조타기를 수동으로 전환하지 않은 점, 일등항해사로부터 “변침 시점에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는 진술이 나온 점 등을 중대한 과실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후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한다.
60대 선장 C씨도 근무 시간에 근무지를 이탈해 사고를 막지 못한 의혹이 있어 신병 처리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해경은 좌초 직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목포 VTS는 사고 당시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으며 사고 전 교신 기록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여객선은 오른쪽으로 90도가량 변침(방향 전환)해야 하는 1600m 전 지점을 그냥 지나쳤고, 3분 뒤 무인도 암초와 충돌한 것으로 확인됐다. 22노트(시속 40㎞) 속력을 유지한 채 그대로 돌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상 절차라면 해당 구간은 자동 조타기 해제 후 수동 조타로 전환해 항로를 수정해야 한다.
해경은 선박의 항해기록장치(VDR) 분석과 이날 오후 선체 합동 감식을 통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추가로 확인할 방침이다.
선사인 씨월드고속훼리 측은 조사와 점검이 완료될 때까지 운항을 잠정 중단하기로 하고 이날 정기운항편을 결항한다고 공지했다. 선사 측은 또 이날 오전 7시부터 승객들에게 여객선에 실려있는 차량과 화물을 하선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승객들은 관계기관의 안전 및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 차량과 수화물을 수령하게 된다.
해경의 1차 조사 결과 이날 사고는 협수로 구간 내 자동 운항 전환 탓에 여객선과 무인도 간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항해 책임자는 휴대전화를 보느라 수동으로 운항해야 하는 구간에서 자동 항법 장치에 선박 조종을 맡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선박은 변침(방향 전환) 시기를 놓쳤고, 무인도로 돌진으로 선체 절반가량이 걸터앉는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해당 항로는 선원 중 1등 항해사가 운항하는 구간이다. 선장은 조타실에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원 중 첫 사고 신고자도 1등 항해사로 확인됐다.
해경 등에 따르면 제주에서 전남 목포로 가던 배는 갑자기 항로를 벗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서쪽으로 약 3㎞ 떨어진 무인도인 족도 암초와 충돌했다. 암초에 걸린 배는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졌으나 넘어지진 않았다. 당시는 썰물이라 펄이 드러난 상태였다.
시속 40킬로미터 속도로 배가 뻘과 모래톱이 있는 무인도에 충돌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지 다른 암초나 바위 섬 등에 부딪혔다면 대형 사고가 날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배 안에 물이 차거나 불이 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배 앞머리 쪽이 일부 파손되긴 했지만 침몰할 정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한 탑승객은 소셜미디어에 ‘쾅 소리가 나더니 배가 기울었다. 어디 외딴섬에 잠시 기대고 있는 것 같다’며 ‘급히 구명조끼를 챙겨 맨 위에 올라와 있다.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썼다.
선장과 항해사 등의 음주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19상황실 최초 신고자는 승객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선사와 승무원들의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해경은 살펴볼 예정이다.
사고 당시 바다는 잔잔한 상태였다. 북서풍이 초속 4~6m로 불었다. 파고는 0.5~1m 수준이었다. 해경의 다른 관계자는 “다행히 바다가 잔잔했던 덕분에 충격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퀸제누비아 2호는 2021년 12월 운항을 시작했다. 작년 2월 말부터 목포-제주 항로 운항에 투입됐다. 한국 선적으로 제주와 목포를 매일 한 차례 왕복한다. 씨월드고속훼리가 운용하는 길이 170m·너비 26m·높이 14.5m의 대형 카페리로, 최대 여객 정원은 1010명, 적재 용량은 3552t이다.
한편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을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인명 피해가 없도록 신속히 사고 수습에 나서 달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