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경주 한미정상회담때의 한미 정상들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한 한미양국의 안보 협상 결과가 문서 형태로 공식화됐다. 한미간 무역협상도 최종 마무리됐다.

대통령실과 미국 백악관은 14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양국간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동시에 공개했다. 지난 7월 양국이 큰 틀의 무역합의를 이룬 뒤 세부내용을 놓고 줄다리기를 한지 4개월여만에 최종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백악관은 “미국은 한국이 공격형 원자력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며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한 품목별 관세를 15%로 낮추고, 한국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확대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백악관이 이날 발표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지난 7월 큰 틀의 발표가 이뤄진 무역 합의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조선 분야에 1500억 달러, 전략적 투자 2000억 달러를 하는 대가로 미국이 자동차와 차 부품, 목재 등에 부과한 품목별 관세를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다만 양해각서(MOU)에 따른 투자액이 한 해에 200억 달러를 넘지 않도록 했다. 외환 시장 안전을 위한 장치다. 한국이 조달금액과 시점의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 등의 안전장치도 확보했다.

의약품 관세 역시 15%를 초과하지 않기로 했고, 핵심전략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향후 체결될 수 있는 협정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반도체 교역규모가 한국 이상인 국가를 비교대샹으로 삼았다. 이와관련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주요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환경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보 분야에서는 이른바 한미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해 “미국은 주한 미군의 지속적 주둔을 통한 한국 방어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출범시킨 ‘핵협의그룹(NCG)’을 포함한 협력 강화를 약속하며 “미국은 핵 능력을 포함한 전 범위 역량을 활용해 확장 억제(핵우산)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돼 있다.

이재명 대통령


이이이재명 대통령은 국방 지출을 GDP의 3.5%로 가능한 조속히 증액할 계획임을 공유했고, 2030년까지 250억 달러어치 군사 장비를 미국으로부터 구매하기로 했다. 주한 미군에도 총 330억 달러의 포괄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한국은 북한에 대한 연합 재래식 방어를 주도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 정상은 “한반도와 인·태 지역의 평화·안보·번영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정부는 임기 내내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2018년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 성명 이행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 했는데 양국 정상이 북한이 ‘의미 있는 대화’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대만 해협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미 정상은 전역의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양안(兩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장려하고, 일방적 현상 변경(unilateral changes to the status quo)에 반대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이미 승인 방침을 밝힌 핵추진 원자력잠수함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한국이 공격형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한국의 민수용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추진 과정을 지지하고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관련, 사실상 한국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의 한미원자력협정이 개정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앞서 핵추진잠함 건조가 필라델피아의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이뤄지길 바란다는 취지로 언급했지만, 이날 백악관 팩트시트에는 건조 장소와 조건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진행이 됐다. 우리 핵잠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며 한국 내에서 건조할 계획임을 다시 분명히 했다.

백악관 발표 팩트시트는 또 “양국이 조선 작업반을 통해 유지·보수, 수리·정비, 인력 개발, 조선소 현대화, 공급망 회복 탄력성 등에서 추가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며 “이런 노력은 한국 내 미국 선박 건조 가능성을 포함해 미 함정의 숫자를 최대한 신속하게 늘릴 것”이라고 했다.

이날 팩트 시트에는 미국 기업들의 요구사항들도 대거 포함됐다. 특히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상호 무역 증진 약속, 실행 계획을 문서화해 연말까지 한미 합동위원회에서 채택할 예정”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규제 부담 경감, 식품·농산물에 대한 비관세 장벽 해결, 한국의 특허법 조약(PCT) 가입 등이 포함됐다.

또 망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하는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률·정책을 언급하며 “미국 기업이 차별받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하고, 위치·개인 정보 등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을 용이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향후 양국간 개별 협상에서 다시 치열한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들이다.

지난 7월말 미 상무부 회의실에서 처음 열린 한미상무장관회담


한편 한국과 미국 통상장관은 3500억달러(약 509조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에도 14일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날 산업통상부는 김정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MOU’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MOU에는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 실행 방안과 양국이 합의한 품목별 관세율, 비관세 분야 합의 내용 등이 담겼다.

이 MOU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2000억달러 직접 투자 대상 사업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인 2029년 1월까지 선정하기로 했다. 투자 사업은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협의위원회가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총괄하는 투자위원회와 협의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추천한다.

추천 사업은 ‘상업적으로 합리적(commercially reasonable)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MOU에 담겼다. 산업부는 “충분한 투자금 회수가 보장되는 투자를 의미한다”고 했다.

한국은 투자처가 정해지고 45일 후에 사업 자금을 미국에 보내줘야 한다. 한국이 미국의 요청에도 돈을 제때 보내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이 받을 이자를 대신 수취하게 되고 대미 관세가 인상될 수 있다.

미국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V·Special Purpose Vehicle)을 만들기로 했다. 각 사업별로 프로젝트SPV를 만들고, 이를 투자SPV가 총괄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특정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다른 프로젝트를 통해 수익을 보전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했다.

투자 수익 배분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가 5대5로 하고, 원리금 상환 이후로는 한미가 1대9로 하기로 했다. 한국은 향후 20년 내 원리금 전액 상환이 우려되면 수익 배분 비율 조정을 요청할 권리를 갖는다.

또 한국 정부는 미국 조선업에 민간 투자, 정부 보증, 선박금융 등의 방식으로 1500억달러를 투입한다. 산업부는 “발생하는 모든 수익이 우리 기업에 귀속되는 구조”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팩트시트 발표 소식을 직접 브리핑하면서 "이로써 우리 경제와 안보의 최대 변수 중 하나였던 한미 무역·통상 협상 및 안보 협의가 최종적으로 타결됐다"며 "한미동맹의 르네상스 문이 활짝 열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